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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WORLD

생존한 아폴로 우주비행사들의 이야기

by 명품24시 2024. 1.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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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한 아폴로 우주비행사

오늘은 정말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가지고 왔습니다. 다들 우주 가보셨나요? 아마 가지 못한 분들이 99%가 되지 않을까 합니다. 우리는 우주가 어떤 곳인지 영상이나 사진으로만 봤죠. 이에 이번 포스팅에서는 생존한 아폴로 우주비행사들이에 대한 포스팅을 해볼까 합니다.

생존한 아폴로 우주비행사

 1960년대와 1970년대에 아폴로 임무를 통해 달에 다녀온 24명의 나사 우주비행사들은 우주 탐험의 선구자였습니다. 2024년에는 사람을 달 표면에 다시 올려놓기 위한 경쟁이 다시 한 번 가열될 예정입니다. 1월 8일, 엘론 머스크의 SpaceX의 민간 경쟁사 중 하나인 United Launch Alliance의 벌컨 센토르가 Astrobotic의 페레그린 1호를 싣고 처녀 달 탐사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발사되었습니다. 페레그린은 2월에 달에 도착하면 아폴로 프로그램 이후 최초로 달에 연착륙하는 미국 우주선이 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11월에는 50여 년 만에 처음으로 승무원이 탑승하는 달 탐사선인 아르테미스 2호를 발사할 예정입니다. 나사는 새로운 프로그램을 통해 10년 안에 우주비행사가 달에 거주할 수 있기를 희망하고 있습니다. 중국은 또한 2030년까지 달 표면에 사람이 살기를 희망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발사 계획은 아폴로 우주비행사의 수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슬픈 사실을 강조합니다. 이 프로그램의 켄 매팅리와 프랭크 보먼은 작년 말 서로 며칠 간격으로 사망했습니다. 이제 지구 궤도 너머를 항해한 사람은 8명만 남았습니다. 그들은 누구이며 어떤 이야기를 가지고 있을지 그 중 몇 분들의 행적을 조사해봤습니다.

두번째 달을 밟은 버즈 올드린

1969년 7월 21일, 전직 전투기 조종사 에드윈 "버즈" 올드린은 달 착륙선을 떠나 달 표면을 밟은 두 번째 사람이 되었습니다. 거의 20분 전에 그의 지휘관인 닐 암스트롱이 첫 번째 사람이었습니다. 올드린의 첫 마디는 "아름다운 경치"였습니다. "대단하지 않나요?" 암스트롱이 물었습니다. "여기 경치가 정말 장관이네요." "장엄한 황량함"이라고 알드린이 대답했습니다. 암스트롱은 자신이 2등이라는 사실이 결코 편안하게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그의 승무원 동료인 마이클 콜린스는 올드린이 "2등에 만족하기보다 달에 첫발을 내딛지 못한 것을 더 원망했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올드린은 여전히 자신의 업적을 자랑스러워했고, 수년 후 아폴로 11호가 정교한 거짓말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을 만났을 때 72세의 올드린은 그의 턱을 주먹으로 때렸습니다.

그리고 2012년 닐 암스트롱이 사망한 후 올드린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진정한 미국 영웅이자 내가 아는 최고의 파일럿의 죽음을 애도하는 데 전 세계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동참하고 있다는 것을 압니다." 그는 말년에 어려움을 겪었지만 모험에 대한 갈증을 잃지 않았고, 86세의 나이에 북극과 남극 탐험에 참여했습니다. 그는 유명세를 누리면서도 우주 프로그램, 특히 화성 탐험의 필요성에 대한 옹호자로 남았습니다. 그는 "우리는 아폴로호에서 그렇게 했듯이 화성 탐사도 그냥 갔다가 돌아와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의 이름은 영화 토이 스토리 시리즈의 버즈 라이트이어에게 영감을 준 인물로 새로운 세대에게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2023년 1월, 93세의 나이에 그는 네 번째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지구 저궤도를 넘어 달에 도달한 빌 앤더스

1968년 12월, 빌 앤더스는 인류가 지구 저궤도를 넘어선 최초의 임무이자 달에 도달하여 궤도를 도는 최초의 승무원 비행인 아폴로 8호를 타고 비행했습니다. 우주선이 달 뒤에서 달 표면을 네 번째 통과할 때 승무원들은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지구 일출'을 목격했고, 앤더스는 그 순간을 필름에 담았습니다. 이 사진은 전 세계 환경 운동에 동기를 부여하고 지구 보호에 대한 행동주의와 인식을 고취하기 위한 연례 행사인 지구의 날을 제정하는 데 기여한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앤더스는 그 순간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달을 탐사하기 위해 여기까지 왔고, 우리가 발견한 가장 중요한 것은 지구였습니다." 1969년 우주 프로그램에서 은퇴한 후 앤더스는 수십 년 동안 주로 항공우주 업계에서 일했습니다. 1970년대에는 1년간 노르웨이 주재 미국 대사를 역임하기도 했습니다.

달에 발에 딛은 생존자 중 한 명인 찰스 듀크

아직 생존 중인 달에 발을 디딘 사람은 네 명뿐입니다. 그 중 한 명은 찰스 듀크입니다. 그는 36세로서 달 표면에 발을 디딘 최연소자가 되었습니다. 이후, BBC 인터뷰에서 그는 달의 "장엄한 지형"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그 아름다움... 우주의 어둠과 달의 지평선 사이의 선명한 대비... 결코 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정말 극적이었죠." 하지만 그는 이미 나사의 달 탐사에서 또 다른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었습니다. 1969년 아폴로 11호가 착륙한 후, 닐 암스트롱이 전화선 끝에서 초조하게 기다리던 것은 바로 관제실에서 캡슐 커뮤니케이터, 즉 캡콤으로 일하던 듀크였습니다.

"휴스턴, 여기는 트랜퀼리티 기지다. 이글이 착륙했습니다." 듀크는 특유의 남부 출신 말투로 대답했습니다. "로저, 트랜퀼리티. 지상에 대원들이 파랗게 변하기 직전이고, 다시 숨을 쉬고 있다."라고 답했습니다. "정말 진심이었어요, 마지막 순간까지 숨을 참았어요."라고 그는 나중에 BBC에 말했습니다. 2022년 듀크는 BBC와의 인터뷰에서 나사의 아르테미스 미션에 대한 큰 기대와 함께 차세대 우주비행사들에게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착륙 지점으로 남극 근처를 선택한 이유는 달에 얼음이 있다면 그 지역에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남극은 매우 험난하기 때문에 착륙이 어려울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해낼 것입니다." 찰리 듀크는 현재 텍사스주 샌안토니오 외곽에서 도로시와 함께 60년 동안 결혼 생활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지질학자 였던 해리슨 슈미트

당시의 다른 우주비행사들과 달리 슈미트는 미군 파일럿으로 복무하지 않았습니다. 지질학자이자 학자였던 그는 1965년 스스로 과학자 겸 우주비행사가 되기 전에는 NASA의 우주비행사들에게 달 탐사 시 무엇을 찾아야 하는지 가르쳤습니다. 슈미트는 1972년 12월 달에 달 표면에 발을 디딘 마지막 두 사람 중 한 명인 유진 서넌 사령관과 함께 달 탐사선 아폴로 17호의 마지막 승무원으로 참여했습니다. 1975년 NASA를 떠난 후 고향인 뉴멕시코 주에서 미국 상원의원에 당선되었지만 단 한 번의 임기만 수행했습니다. 이후 그는 다양한 산업 분야에서 컨설턴트로 일하면서 학계에서도 계속 활동했습니다. 그는 기후 변화에 대한 과학적 합의에 반대하는 발언을 한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가까스로 생존한 프레드 하이즈 

프레드 헤이즈는 1970년 아폴로 13호의 승무원 중 한 명으로, 우주선이 지구에서 20만 마일(321,000km) 이상 떨어진 곳에서 기내 폭발로 인해 임무가 중단된 후 가까스로 재앙을 피할 수 있었습니다. 전 세계는 나사가 손상된 우주선과 승무원을 무사히 귀환시키는 과정을 긴장된 마음으로 지켜보았습니다. 귀환 후 하이즈와 그의 승무원인 제임스 러벨과 잭 스위거트는 놀랍게도 유명인이 되었습니다. 하이즈는 토크쇼 진행자 조니 카슨과의 인터뷰에서 "내가 달에 있는 동안 뭔가 놓친 게 있는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하이즈는 달에 가지 못했습니다.

아폴로 19호의 사령관이 될 예정이었지만 아폴로 17호 이후의 다른 모든 비행과 마찬가지로 예산 삭감으로 인해 임무가 취소되었습니다. 이후 그는 프로토타입 우주왕복선 엔터프라이즈호의 테스트 파일럿으로 근무했습니다. 다른 많은 아폴로 동창들과 마찬가지로 하이즈도 나사를 떠난 후에도 은퇴할 때까지 항공우주 업계에서 계속 일했습니다.

이 외에도 생존자는 여러명이 있습니다. 이번 포스팅에서는 위의 생존한 아폴로 우주비행사들 5명에 대한 업적과 그들의 삶의 이야기로 끝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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